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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못지않은 60년대 신세대 1971년 조경철 박사와 결혼 후 은퇴한 전계현을 아십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전지현입니까?」라고 되묻을 것이다.1960년대 국민여배우로 활동했던 전계현(68). 1971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 은퇴 후 30년 만에 천계현이라는 이름이 불쑥 튀어나온 것은 현재 최고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전지현과 이름이 비슷하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하지만 원로배우 천계현과 현재 최고의 인기배우 전지현의 우연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CF 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전지현이 최근 출연한 백만 달러의 몸만들기 광고가 화제를 모았다. 전지현이 광고 모델로 활약하고 있는 태평양 화장품의 40여 년 전 광고 모델에 천계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우연이다. 물론 그의 당시 인기는 최근 전지현의 인기 못지않게 서울 시내를 누비지 못할 정도로 최고 인기를 구가했다.전지현이요? 아, 영화에 나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키 크고 예쁜 배우였는데라며 전지현의 모습을 떠올리는 원로 배우의 모습으로는 요즘 영화나 드라마도 꼭 본다는 얘기가 아닐까.그는 "확실한 해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1960년쯤일 것 같다"며 태평양 화장품의 모델로 활동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이미 고인이 된 서성환 회장이 직접 광고 촬영을 제안해와 광고 모델이 됐다고. 이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때는 전신주에 화장품 광고판을 달았다는 얘기를 들으면 세월이 유수하다는 말이 딱 맞을 것 같다. 요즘 같으면 억대의 모델료지만 당시 그가 광고모델료로 받은 돈은 수만 원. 하지만 회사원 월급이 수천 원도 안 되는 그 시절로 본다면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그의 연예계 데뷔는 19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성민 감독의 영화 어디로 갈까가 그의 첫 출연작이다. 이후 군도 빨간 선인장 미워도 다시 한 번 등 20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1960년대 한국 연예계를 화려하게 장식한 배우로 활동했다.종로에 HLKZ라는 방송국이 있었다. 한국 최초의 상업TV 방송이었는데 첫 주말 연속극에 출연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스튜디오가 바닥으로 되어 있어서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곤 했습니다.요즘 시청자들은 못 믿지만 당시 드라마는 생방송으로 방송됐다는 사실도 놀라울 따름이죠라며 50년대 후반의 방송 시절을 떠올린다.천계현은 1971년 결혼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한다.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의 결혼 상대는 아폴로 박사로 유명한 조경철 박사. 결혼 이듬해인 1972년 딸을, 이듬해 아들을 낳은 김수연 감독이 1974년 설득해 신성일 선우영녀 금봉 김진규 등과 영화 산불에 출연한 이래 30년간 가정을 지켜왔다.디지털 시대입니다. 1년이 10년 같은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지는 어린 연기자들을 보며 40년 전 함께 활동했던 그들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많은 시간이 흘렀네요. 요즘 신세대 배우들을 보면 굉장히 당차고 적극적인 모습이 보기 좋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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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워도 한번 더」(1968)로 유명한 배우 전계현이 지병으로 20일에 사망했다. 향년 82세(19.12.21) 1936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 한국 최초의 TV방송 HLKZ-TV의 1기 탤런트로 뽑혀 연기를 시작했다.영화 어디로 갈까(1958)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영화 가는 봄 오는 봄(1959)이 흥행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정서영 감독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 번(1968)으로 연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이 영화는 국도극장의 단관 개봉에 64일 동안 36만여 명의 관객(당시 서울 인구 약 450만 명)을 모아 흥행 신기록을 세웠다. 천계현은 신호(신영균)의 아내 역으로 인기를 끌면서 제12회 부일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정소연 감독과 다시 손잡고 아부지와 함께 춤을(1970)에 출연했다. 영화 고향을 찾지 마라(1971), 증오가 바뀌어(1972), 오늘 밤이여 영원히(1972), 충녀(1972) 등에 출연하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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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천문학자 조경철 박사와 결혼한 뒤 연기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상황을 생중계하며 일명 아폴로 박사로 유명해진 조 박사는 평생 천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다 2010년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서원, 딸 서화 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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